2010년 7월 21일 수요일

진흥왕, 아소카왕의 뒤를 이어 금륜을 꿈꾸다

태양을 삼킨 거인 진흥왕 태양을 삼킨 거인 진흥왕
역사 인물 편찬 위원회 | 역사디딤돌 | 200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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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년, 신라를 군사적, 문화적으로 발전시켜 삼국통일의 주역으로서의 기반을 다진 신라 제24대의 왕, 진흥왕이 태어난다. 성은 김, 이름은 삼맥종이며, 지증왕의 손자요, 갈문왕 입종의 아들이다. 540년, 진흥왕은 7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어린 진흥왕은 왕으로서의 학식을 다지느라 하루 종일 국학의 박사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축시가 이르도록, 진흥왕은 그의 책상에서 <아육왕경>을 읽느라 독서망양이다. <아육왕경>, 그가 인민 통치의 모델로 삼은 인도의 아소카왕의 업적이 담긴 사서이다. 활발한 정복활동과 교화를 통해 최초로 인도 대륙의 완전한 통일을 이룩하였으며, 마우리아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아소카왕의 전설적인 이야기는 어린 진흥왕의 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흥왕은 자신도 아소카왕의 행로를 본보기 삼아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성군이 되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진흥왕이 생각하기를 '위엄과 덕으로서 세상을 제패하고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통일한 아육왕은 가히 존경할 위인이라'.

어머니 '지소태후'의 도움으로 왕권을 유지해온 진흥왕은 독립하여 본격적으로 아소카왕을 향한 야망과 꿈을 실현한다. 진흥왕은 여러 대신들을 앞에 두고, 단언하건대, ' 앞으로 백제를 이용하여 고구려를 견제하며, 이사부를 병부령에 임하고 부국강병에 주력하리라'. 진흥왕은 적극적으로 정복활동을 전개하였다. 553년, 진흥왕은 백제와 힘을 합쳐 고구려를 한강유역에서 몰아내고, 즉시 백제와의 동맹관계를 파하여 그들이 점령했던 한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거기에 신주를 설치하여 백제의 보복전쟁에 대비하였으며, 554년 백제 성왕의 군사를 격퇴하고, 성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561년 이사부의 공으로 대가야를 평정하고, 이어 주위의 침입에 대비, 한강 유역에 주군과 강력한 군단을 설치하여 세력을 확실히 하였다. 아소카왕의 업적을 따라 진흥왕은 활발한 정복활동을 통해 '정복왕'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이어서 '교화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자 하였는데, 진흥왕이 이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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