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블라인드 사이드 - DVD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팀 맥그로, 존 리 행콕, 퀸튼 아론, 제이 헤드 | 워너브러더스 | 20100805 평점 ![]() ![]() ![]() ![]() ![]()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
TV 에 나온 예고편을 보고 순간 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영화를 찾았다.
아직 한국에서 개봉을 하지 않은 터라 왠지 조심스러운 영화이다.
오랜만에 그림 공부하는 마음으로 본 영화...
산드라 블록의 연기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과하지 않은 그녀의 연기가 경제적 격차가 가져오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정말 그를 아끼는 또 다른 그 녀석의 어머니로서의 그녀를 제대로 보여준 듯 하다.
Big Mike가 아닌 Michel로 불려지면서
그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성선설인가? 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마이클과 다른 빈민가의 다른 이들은 몇 년 후 총기사건으로 사망해버리니까.
마이클이 세탁소나 체육관을 전전하지 하지 않고
다른 빈민가 친구들처럼 마약을 하거나 총을 찾아다녔다면
그가 리 앤을 만나지는 못했을 것 이다.
결국 리 앤을 만나게 된 것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것을 당연시 하며 악행을 행하지 않고
그의 처지에 순응하며 나쁘지 않게...그렇다고 착하고 모범적이지도 않았으니..
그렇게 살아간 것이 그에게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 아닐까?
그의 큰 덩치를 이용해 약탈을 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경기가 끝난 후 남이 먹다버린 팝콘을 주으면서 그의 굶주림을 달랬고
추위를 잊기위해 약을 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려고 추위를 참으며 밤길을 서성였다.
그리고 리 앤이 그에게 손길을 내밀었을 때,
그는 단순히 그 손을 잡기만 한 것이아니라
그에게 내밀어준 그녀에게 그의 방식대로 감사함을 전했다.
미식축구 경기에 정신이 팔렸있던 리 앤 가족을
진정한 추수감사절 식탁으로 불러들인 마이클의 식사예절은
마이클이 처음에 그 콜린이나 JS처럼 미식축구를 즐기지 않은 탓도 있지만
TV만 바라보며 자기 음식을 소비하는 곳엔 그 역시 동참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뭔가 제대로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지만
그 마음이 이끈 행동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를 원하는 리 앤의 마음도 움직이게 했다.
TV를 끄고 제대로 추수감사절 식탁을 차리고 기도를 드리고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단순히 마이클이 그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아니라
마이클로 인해 가족의 사이가 돈독해지고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이 공식적으로 리 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결정되고
방을 마련해 주었을 때,
방 자체 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침대를 (자기 이부자리를) 가지게 되어 너무나 기뻐하는 그를 보며
리 앤의 마음 뿐 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나 조차도
내가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음에 부끄러웠다.
마이클이 느끼는 작은 것에 대한 감사함은
리 앤의 마음을 그리고 다른 가족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가 공부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하는 것임을 알게된
선생님들의 관심도 점점 마이클을 변화시켰고 그를 공부도 할 줄 아는 아이로 변화시켰으며
드디어 미식축구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
마이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뭔지 아는 리 앤의 조언으로
제대로 경기를 치르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것, 자신의 가족은 꼭 지키겠다는 그의 마음...
가족...
내게 있어 가족은 상처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오래되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을 서로서로 채워주지 못하고
실망하고, 화내고 그로 인해 소원해지고...
가족이 나에게 뭔가를 해 주길 바랐지
내가 내 가족을 보호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어린 시절, 엄격하신 부모님이 너무 무섭고 싫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난 입양아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했던 나이다.
사춘기 시절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어머니와 언쟁, 아버지와는 침묵기를 거치면서
가족의 존재는 내게 짐 그 자체였다.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그들만의 틀안에 가두는 것만 같아서
항상 원망하고 미워하던 것이 가족이었다.
오빠라는 존재는 너무나 대단해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사람같았고
새 언니는 왠지 모르게 낯선 존재였다.
한 번도 내 가족을 보호해야하는 존재로 생각한 적이 없는 듯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고
그 아픔을 보듬어 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는 데
난 그 아픔을 내 가족이 토닥여주지 않는 데 불만만 가지고 있었지
내가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왠지 억울해서이다.
왜 나만 그래야하는 것일까?라고.
그들은 나를 그렇게 아껴주는 것 같지 않은 데
왜 나만 그들을 생각하고 챙겨줘야하는 것일까?라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들을 위해 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나만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잘 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잘하든 못하든 가족은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못하면 나를 비난 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잘한 것 하나도 없는 내 20대를 묵묵히 지켜준 것은
부모님의 관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고 도망가고 싶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해버려서
긍정적인 기운으로 쓰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를 모조리 포기 하지 않고 최소한으로라도 나를 지탱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70이 넘도록 막내 딸 걱정하는 그런 부모님이 있기 때문이리라.
통금시간이 있다고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솔직히 감사한 부분도 있다.
그렇게 엄격하게 하셨기에
노부모와 그렇게 아침을 저녁을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늦둥이로 태어나
어머니의 지병 덕에 함께 식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없었던 내게
또 다른 형태의 보상이 아니었을까?
그 당시에 감사하게 여겼더라면
더 즐겁고 행복한 식사시간이 되었겠지만....
이제라도 깨달은 것이라고 만족해야 하나?
30여년 가까이 마음속에 담아왔던 응어리를
이 영화 한 편으로 다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시선을 내게 준 것은 분명하다.
이 시선을 잊지 않고 오래 간직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모님과 말타툼하게 되면 또 깡그리 잊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철부지 막내 딸이 될 것 같다.
그래도...감사하자.
이렇게 살아계심에.
지금 이렇게 나와 함께하고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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